케이트박
2015. 9. 22. 05:45
금이를 데리고 아침에 귤밭 사이를 걷다보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날 때 그 질기고 가는 줄이 있어 모자에 걸리고 몸에 걸려 당기다 끊어지는데
다음날 가보면 또 거미줄이 새로 만들어져 있다.
참 부지런도 하지...
어릴적 거미는 징그럽기만 했는데
흙이 그립고 나무가 그리워 갖게 된 마당에서 흔히 만나는 거미쯤이야
한 지붕에 살아도 이제는 괜찮다.
거미만한 기회주의자가 어디 있으랴,
지나가던 벌레들이 걸려들면 빛의 속도로 달려와
그 가늘고 긴 실로 꽁꽁 동여매니 아주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워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거미는 참 부지런하다.
틈이 나는 곳에 줄을 치고 집을 지어놓고
그것이 바람이든 사람이든 지나가는 길에 없어지기라도 하면
다시 처음부터 열심히 줄을 치며 그 작은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한다.
남이 공들여 지은 집일랑은 생각지도 않고 무심하게 지나며 망가뜨리는 커다랗고 멍청한 인간 따위
집을 지으며 불평을 할지는 모르지만 거미는 그저 자기일을 부지런히 한다.
행운이란 건 누구에게도 오지만 열심히 그물을 치며 준비하는 거미처럼
준비하는 자만이 그 행운을 잡을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운이란 스스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풍요로운 우주로부터 어찌 축복이 오지 않을까마는
그 복을 담을 그릇은 몸이 부숴져라 만들어야 하는 일이니
세상에 "식은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란 없는가 보다.
...거미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