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름인가, 햇살에 지치는 한낮.
잎은 추레해도 얼굴이 얌전하고 고운 꽃이 피었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꽃집 쥔장에게서 업어온 꽃인데 자갈이 많은 험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심지 않았는데 꽃밭에도 올라가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더 많아질 것 같다.
봄이라 꽃들이 이제 많이 피었다.
겨우내 삭막하던 때가 언제였냐는 듯, 꽃들이 한창 피어 꽃 보는 즐거움이 크다.
이쁜이가 그늘을 찾아 꽃 위에 앉았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동네 아인데 내가 무슨 권리로 얘를 묶나 하는 생각이 든다.
풀어주었다 다시 저녁에 묶었다를 반복한다.
사납지도 않은데 오해 받게 짖어 문제다.
제발 지나가는 차들 쫓아다니며 짖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쫓아다니며 짖지 말고
집까지 쫓아와서 꽃님이랑 곰식이에게 싸움 걸지도 말아줘...ㅠㅠ
어찌 된 것인지 울 마장 암컷들은 다 한성질 하는 파이터fighter다.
독한 금이, 더 지독한 이쁜이, 그만큼 지지 않는 꽃님이.
금이는 이쁜이한테 지고 이쁜이는 꽃님이에게 지고 꽃님이는 금이에게 진다.
???
오른쪽 항아리엔 이녀석들 맘마가 들어있다.
커다란 사료 한 포대와 작은 오렌지색 플라스틱 바가지가 다 들어간다.
예쁘게 사무실을 짓고 마장을 다 가꾼 후 완벽한 것을 즐기려고 하지말고
가꾸면서 매일 꽃이 핀 것, 예쁜 구석구석을 만날 때마다 즐겨야지.
티벳의 승려들은 정성을 들여 오랫동안 여러 색의 모래로 커다란 문양을 함께 만들다가 완성되면
아무리 아름답고 대단한 작품이라도 단박에 섞어 뒤엎어 버리더라.
내셔날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본 것인데 그런 것을 뭐라고 할텐데 명칭은 모르겠고.
나는 그것을 ...아까비...라 한다.ㅎㅎ
삶은 매일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이며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일까?
이제는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말타기 싫다.
추워도 더워도 비가 와도 좋은 시절이 지났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돌아가신 후로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을 때가 힘들다.
더운 한낮엔 이렇게 앉아 꽃을 즐기고 그냥 마장이랑 말녀석들 바라만 봐도 흡족하다.
로즈마리 그늘에 앉아 쉬는 금이.
의자 옆엔 질투 많은 물개가 그새 이쁜이에게 싸움을 걸어 볼을 물고 늘어진다.
왜 옆에서 이쁜짓 하는 거야?
물개는 언제고 많이 많이 더 많이 자기만 사랑해달라고 조르는 아이다.
고마워...사랑해줘서.
우리 개들이랑 차가 다니는 길 옆 담 밑에 꽃을 심다가 발견한 꿩 알 한 개.
품고 앉아있을 만큼 한적하지 않은 곳인데 알 하나를 낳고 사라졌다.
꿩이 조금 모자라는 구석이 있는가보다.
뛰어가는 걸 보면 우습기도 하고 정겹기도 하다.
점심 먹고 쉬는 녀석들.
운동하고 씻는 카포테.
묶어놓은 줄을 잘코가 슬쩍 풀고는 혀를 낼름한다.
남 묶인 것도 싫은 모양이다.
쑥쑥 잘 자라는 풀 놀리기가 아까워서 아침에 두 시간씩 먹였더니 살이 도로 쪘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급 다여트중.
폰을 넣다가 잘못 눌러 찍힌 내 그림자.
곁에 말이 없는 그림자네.
잘코를 데리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