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니라 해병이었어요."

 

400킬로정도 되는 이 전설적인 암말은 스크램블 계란이랑

맥주, 쵸콜렛푸딩도 아주 좋아했는데

원래 1952년 250불 주고 누나의 의족을 사기 위해 말을 내놓은 소년에게서 사들였다.

그때는 플레임Flam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었는데

 탱크를 향해 쏘는 포탄에도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을 돌보던 조셉래탐 상사는 이 말에게 모든 걸 가르쳐주었는데

총알이 날아올 때 무릎을 꿇는 것 또는 철조망을 넘는 것까지 포함했다고 한다.

전투지를 오가는 길을 빨리 익혔으며 혼자 다녔다고 한다.

이 개막식에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참석을 할 것인데 많은 감회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레클리스가 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어 레클리스를 기념하러 옵니다.

"그분들이 눈물을 많이 흘릴 거에요"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있었을 때에도 토요일 저녁신문에도 기사가 나고

Art Linkletter Show외에도 다른 티브이 프로그램에도 출연을 했단다.

영화를 만들 계획은 있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곧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1960년 펜들튼 부대에서 은퇴하고 자연사를 한 후 1968년 5월 13일

군대의 예식을 갖추어 묻혔다.

 

세마리 숫말을 낳았는데 이름은  Fearless, Dauntless and Chesty 라고 하며

한달만에 죽은 암망아지도 하나 낳았다고 한다.

대가 끊어진 것이 실망스럽지만 사람들이 이 개막식을 통해

 다시 렉클리스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로빈허튼이 말했다.

"이 이야기 때문에 전 너무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말은 제 삶을 아주 바꿔놓았죠."

 미국방부 기록에 따르면 한국전쟁당시 33000명의 미군이 죽었으며 10만명이 부상을 당하고

7000명의 군인들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60년기념식에 렉클리스와 나란히 싸웠던 다섯명의 해병들이 참가를 할 것이라고

 Korean War Committee의 Maj. Billy Canedo가 말했다.

 

"이 이야기가 놀라운 것은 렉클리스가 혼자서 이 임무들을 수행해냈다는 것입니다."

"해병이 부상을 입으면 렉클리스 등에 실어 부상자들 집합소에 보냈습니다.

그러면 렉클리스는 탄약들을 싣고 돌아왔죠." 카네도가 말한다.

 적의 포격속에서 35마일 이상을 조금도 주저없이 걸었다고 한다.

"동물의 본능을 거스려 동료해병들을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일했습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죠, 그 이야기야말로 정말 위대한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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