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 학교내 폭력과 체벌에 관한 많은 기사와 이슈를 읽으면서
왜 우리 사회에는 우리 아이들이 맞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정말 안타깝다.
아이들끼리도 문제지만 교사가 아이들을 때리는 것도 문제다.
체벌과 학교폭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는 분은 전교생 앞에서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은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조회시간에 교사중 하나가 코를 후벼 파는 것을 보고 웃었다는 이유란다.
그 나이 여학생이면 구르는 낙엽을 보고도 웃는다지 않는가.
그런 여고생을 여러사람 앞에서 따귀를 때린다는 것은 인격적 모욕이고 핑게할 수 없는 폭력이다.
남자 고등학교에서 야구방망이로 학생들을 피멍들게 때렸다는 이야기는 흔하게 듣는다.
이런 교육환경을 배경으로 자란 나는
내 아이들이 자라면서 때리지 않고도 잘 가르치는 교사들과
기껏해야 노는 시간에 교실에 머무는 벌을 받고도 그 벌이 싫어 협력하고 노력하는 아이들,
그리고 학교에 봉사오는 어머니들 말씀을 존중하여
질서정연하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감탄한 적이 있다.
어린 아이들은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하쟎는가,
왜 다른 사람을 힘으로 다스리려는 것이 용납이 되야 하는 건지 납득할 수 없다.
말을 타고 훈련 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한가지가 있다.
마장에 가면 초보자들을 태우는 말들이 있는데 이 말들은 차도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도 차야만 간다고 생각하는 초보자들을 태우다보니
털이 난 피부에 파리만 앉아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말인데도
아무리 힘껏 옆구리를 차도 잘 가려 하지 않는다.
처음이나 아파 말을 듣지 자꾸 차면 아파도 그 자극에 둔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반대로 전혀 때리거나 차지 않는 말들은 다리에 힘만 주어도 가고 뛴다.
강한 자극이 없기 때문에 아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되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형태든지 폭력은 근절되어야 한다.
폭력은 받을 수록 강도가 더해지기 때문에 효과도 적을뿐더러 인격과 감성을 다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변화 시키는데는 내적이고 자발적인 동의와 결의가 있어야 한다.
폭력은 즉각적인 굴복은 얻어낼 수 있지만
결코 근본적이고 기꺼운 순종과 협력,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동물이나 때린다고?
동물도 때리지 않고 가르친다.
사자도 말도 때려서 가르치지 않는다.
단지 말은 사자처럼 사람을 해지지 않기 때문에 때려서 "조련"한다고 하지만
말이 기꺼이 협력하도록 훈련하는 것은 때려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통이 아닌 다른 부정적인 압력으로 원하는 것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신체적 고통을 가해 효과를 얻는 방식보다 효과가 빠르고 낫다.
아마 때리는 것은 빨리 원하는 결과를 보고자 함에서 나오는 것일게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서 즉각적인 결과를 추구한다면 대단히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생존하는 호스 위스퍼러 중에 전설적인 인물이라면
몬티 로버츠(Monty Roberts)가 그 중에 가장 손꼽히는 인물일 것이다.
특히 몬티 로버츠는 그의 책을 통해서 비폭력을 거듭 이야기 하는데
그는 단순히 말을 훈련하는 것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비폭력을 이야기 한다.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 심하게 맞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말들을 훈련시킬때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과
그가 경찰로 있을때 한 사람을 때려 죽게 만드는 것을 보고
자신은 자기가 발견한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다.
몬티가 벌판에서 말들의 떼가 서로 자신들의 행동언어로 의사를 표현 하는 것을 오랜시간 관찰하고
그것을 배워 말에게 시도하여 획기적인 효과를 얻게 되자 말의 언어로 가르치고 훈련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는 이 비폭력적인 방법을 확장해
사람관의 관계에서 비폭력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그가 야생의 말을 처음으로 사람과 만나
자신에게 스스로 다가오게 하는 조인업 (Join-up)시범을 보일때
학대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관람석에서 졸도를 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한번은 네 명이나 몇분 간격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하나같이 폭력을 경험한 상처받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몬티 로버츠는 영국여왕 앞에서도 이러한 그의 조인업 시범을 했고
정기적으로 영국과 유럽 각지에서 시범을 한다.
그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며 회사 CEO들에게
자신의 이러한 철학으로 세미나를 하며 비폭력을 설파한다.
말은 먹히는 동물로서 태생적으로 주변의 사물의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에
단어와 음성으로 하는 언어는 모를지라도 상대의 의도는 정확히 간파한다.
그리고 상대의 의도와 자신의 감정을 즉각 거울처럼 반영한다.
근자에는 내추럴 호스맨쉽이라고 많이들 알고
말 훈련 하는데에 기본적인 이해와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말을 훈련하는데 폭력을 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을 가르치는데 있어서야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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