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불이와 춘추를 데려온지 어느 덧 두 달이 지나고 있다.
이사온지 일주일 되는날이었다.
여느때처럼 오후에 밥주러 왔는데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술래잡기하려고 막사뒤에 숨었나 하고 찾아봐도 없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울타리를 벗어난게 틀림없다.
어떻게 넘어갔지? 그것보다, 어디에 있나?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설마 얘들때문에 출동한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을 줄이야...
경찰서에 신고하자 신고가 들어온게 없다고 한다.
함께 찾아보자며 이리로 출동하겠다는 경찰관의 전화를 끊은지채 1분도 되지 않아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수화기 넘어로 다른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잃어버린 말이 백마와 점박이 말 인가요?'
'네 맞습니다.'
'항아리 가게 앞 콩밭에 위치하고 있으니 어서 와주세요.'
전화를 끊고 재빨리 리드끈과 굴레를 들고 불이나케 달려갔다.
녀석들 남의 콩밭에 들어가 어린 콩잎을 따먹느라 정신이 없다.
다행스레 다친데는 없어 보인다.
찾았으니 이제 잡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잡지?
'말은 서열의 동물이니 대장부터 잡으면 된다.'
그렇게 춘불이부터 잡고나자 춘추가 순순히 잡힌다.
말은 잡았고 이제 마장으로 다시 데려와야 한다.
왕복 2차로 이다보니 말을 데리고 가는 일이 만만치 않을듯 하여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부탁하였다.
그렇게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장으로 되돌아 오게 되었다.
군복무시 수용자들을 계호 하는 일을 담당했었지만 누군가로부터 계호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계속 보호하던 일을 해오다 보호 받았으니(그것도 경찰차로 부터 말이다)
아마도 이 날은 내 생애 가장 든든한 날이었을 것이다.
돌아오고나니 천방지축인 춘추는 뭘 잘못한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춘불이는 그래도 자기가 뭔가를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곳에 한 시간 가까이 가만히 서있더라는...
마치 자숙하는 아이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 날은 나 스스로도 놀라기도 했고 화도 나있었던 상태라
사진 한 장 찍어두질 못한게 아쉽긴 하다.
지난 일 떠올리며 생각해보니 우습다.
울타리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체크 못한 내 잘못이지
눈 앞의 생풀을 갈망하여 밖으로 나간 얘들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가까이서 지켜보며 두 달을 보내본 결과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말을 타기 시작한지 5년이 지나고 있었고
지난 일년 동안은 매일 찾아가 보았으나
지난 두 달간 배운 것이 5년의 경험이 무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5년 탔고 대회도 나가봤으니 말에 대해 뭘 좀 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크나 큰 오산이었다.
그리고 춘불이에게 한 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많이 걷고, 뛰고, 긁고 그리고 자주 먹어야 하는 영혼을 마방에 가둔채
삼시세끼 정해진 양만 주고 키워왔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일이 바빠서 춘불이에게 일주일 동안 못 간 적도 있었다.
그 기간동안 마방에만 갇혀 있었을 녀석을 생각하니 얼굴을 마주하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산통(Colic)은 방목지의 말에게서 드물게 나타난다는
Mcgreevy 교수(시드니 대학)의 말은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산통이 자주 걸리는 말은 그만큼 갇혀 지내는 시간이 많거나(못 걷고, 갇혀 있는 스트레스)
공복기가 잦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은 끊임없이 뭔가를 먹게끔 진화한 동물이다.
그런데 말의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 마방에 가둬지내면서 산통의 확률은 증가하게 된다.
결국 말과 자연과의 사이에 사람이 끼어들면서 말만 고생하는 것이다.
지난 3년동안 위탁관리 해오면서 4번의 산통이 있었다.
처음에 내가 밥먹은지 얼마 안된지 몰랐던 녀석을 운동시켜 걸린 한 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 번 모두 마방에서 생활하다가 걸렸다.
춘불이와의 자유를 찾은 이 곳에서는 적어도 산통이라는
단어를 나의 사전 속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Mcgreevy 교수, 2016년 말튼튼 페스티벌 강연 중에서
@201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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