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다 페인트 두 통을 사와 새로 한 파이프에 칠을 했다.
선블록도 하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은채 수건만 모자에 걸치고 페인트칠을 두 시간 했다.
결과; 파이프는 만족스러운 색이 나왔는데 얼굴은 피서를 잘 다녀 온 피부가 되었다.
땀을 얼마나 쏟았는지 물을 여섯병이나 마셨다.
더운 때 했더니 고생은 했어도 칠이 금방 말라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 더위에는 내가 한다.
요즘 한낮에 누구에게 일을 시키면 욕을 먹지만 내가 하면 욕은 듣지 않는다.
바로 이 색.
위에 있는 파이프를 하고 나니 페인트가 남아 욕심이 생겨 사각마장에 바르기 시작했다.
점심 때가 되어 쉬느라 벤치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다.
일을 놓고 쉬지를 못하니 괜시리 시작했다는 후회가 슬그머니 일어난다.
어제 나머지로 다 하지 못해 조금 남긴 것을 나가서 다시 페인트를 사서 저녁에까지 다 바르고
오늘 아침 일찍 나가 마무리를 하여 페인트 세 통을 다쓰고, 옷 한 벌 잡아먹고 끝냈다.
전에 아버지 작업복에 페인트 색이 여기저기 묻었던 것이 생각난다.
아버지도 일을 보고 쉬지를 못하셔서 고생하셨는데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 나도 일을 마치고야 쉰다.
칠을 하니 색이 짙어 더위에도 눈이 시원한 것이 덜 덥게 느껴진다.
나는 억척 세포가 없는줄 알았는데 억척아줌마 다 되었다.
혼자 이 일을 다 해내다뉘...왠지 이건 감격이 아닌 것 같다.
오늘 아침 녀석들, 네 녀석들은 한쪽에 있는데 장금이는 따로 논다.
나를 보고 다가온다.
저 이뻐하는줄 알고 좋아한다.
주둥이를 붙잡고 뽀뽀 해주며 "잘잤니? 아 이쁘다 아 이쁘다" 했다.
혼자지만 독립적이라 외로워하지 않는다.
베프랑 먹을 것만 있으면 오케이.
한낮의 말들.
더워서 그늘에 있도록 몰아 둔다.
성격 좋은 카포테와 장금이,삼월이는 한 곳에서 먹고
아직 쫓겨다니는 오사와 쫓는 잘코는 양 끝에 따로 둔다.
원하는만큼 완벽한 마장을 만들 수는 없지만 끊임 없이 생각하고 노력하고 만들어 가는 재미는 있다.
오늘 아침 일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며 내 앞서 가는 꽃님이를 보며
나는 시골에 살고 시골 개들을 키우는 시골 사람이 다 되었다고 생각을 했다.